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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특검, 통일교 압수수색 [연합뉴스 제공]

윤석열 전 대통령 당선 직후 숙원 사업을 지원해달라는 통일교의 청탁이 정부 문서에 반영된 것으로 나타났다.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각종 의혹을 수사하는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양측 '유착'이 그만큼 구체화했다는 정황 증거로 보고 있다.

1일 연합뉴스가 입수한 통일교 전 세계본부장 윤모씨 공소장에 따르면 윤씨는 2022년 3월 22일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으로 불리던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의 안내로 서울 종로구 통의동의 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전 대통령을 1시간가량 접견했다고 특검에 진술했다.

권 의원이 한학자 총재가 거주하는 통일교 천정궁을 방문해 한 총재로부터 윤 전 대통령의 대선 승리를 축하한다는 인사를 받은 당일이다.

이 자리에서 윤씨는 제5유엔사무국 설치·아프리카 프로젝트 등 교단 현안 비용을 공적개발원조(ODA)로 충당해달라고 요청했고, 윤 전 대통령은 '함께 논의해 재임 중 이룰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답변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그달 30일 외교부 외교안보분과가 작성한 국정과제 이행계획서에는 아프리카 ODA를 2배로 증액하는 내용의 외교 비전 발표 계획이 담겼다.

그해 11월 김건희 여사가 케냐 영부인 환담 중 '아프리카 새마을운동'을 거론했고, 2024년 6월 윤 전 대통령이 한-아프리카 정상회의에서 아프리카 ODA 규모를 2030년까지 100억 달러(약 14조원)로 확대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관련 메시지가 꾸준히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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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특검, 통일교 압수수색[연합뉴스 제공]

이런 부분이 청탁 취지가 반영된 게 아닌지 특검팀은 의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 차원의 대아프리카 외교 및 개발원조 확대가 순수한 정책 차원의 움직임인지 아니면 특정 이해관계가 가미된 것인지 실체를 규명하기 위한 후속 수사가 이어질 전망이다.

통일교 주요 현안이었던 캄보디아 개발 사업에 대한 정부 지원도 눈에 띄게 늘었다.

2022년 12월 '한국-캄보디아 우정의 다리' 사업 관련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차관 지원이 승인됐고, 이듬해부터는 해당 사업 ODA 예산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2023년 예산으로 약 2억원이 배정됐으나 2024년에는 약 50억원으로 뛰었고, 2025년에는 약 588억원까지 증액됐다. 2024년 5월에는 캄보디아 EDCF 차관 지원 한도액도 2022년부터 2030년 사이 30억달러(약 4조원)로 증액됐다.

특검팀은 청탁 내용이 정부 정책에 반영될 정도로 '유착'이 깊어진 건 대선 때 통일교가 윤 전 대통령을 전폭 밀어줬기 때문이라고 봤다.

2021년 말 윤씨는 교단 원로인 윤정로 세계일보 부회장을 통해 권 의원과 친분을 맺은 뒤 신도들을 동원해 윤 전 대통령 당선을 돕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청탁 과정을 한학자 통일교 총재가 윤씨와 함께 주도했다는 게 특검팀 판단이다.

공소장에는 통일교와 윤석열 정권 사이에 메신저 역할을 한 것으로 지목된 권 의원이 미국 원정도박 의혹을 받던 한 총재의 경찰 수사 정보를 교단 측에 흘려주는 등 적극적으로 비호한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도 구체적으로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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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국회 개회식 참석한 권성동 의원[연합뉴스 제공]

권 의원은 2022년 10월 3일 윤씨에게 "한 총재님이 카지노 하시냐", "경찰 쪽 찌라시인데, 한 총재 등 통일교 임원들이 불법으로 재단 자금을 해외로 반출해 외국환거래법위반 등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어 압수수색 가능성을 언급하며 "카지노 도박, 외환거래법 관련해 2013·2014년 자금 출처가 문제된다"고 구체적 수사 상황까지 전달한 것으로 특검팀은 판단했다.

이같은 수사 정보를 전달받은 교단 실무진은 한 총재의 지시에 따라 PC 등을 초기화하고 회계 프로그램에서 2010∼2013년 사이 회계 정보를 삭제·조작하는 등 조직적으로 증거인멸에 나선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윤씨는 혐의로 정치자금법 위반, 청탁금지법 위반, 증거인멸, 업무상 횡령 등 지난달 18일 구속기소 됐다.

2022년 1월 20대 대선에서 통일교 교인의 표와 조직, 재정 등을 제공하는 대신 윤 전 대통령 당선 후 통일교 현안을 국가 정책으로 추진해달라는 등의 청탁과 함께 권 의원에게 1억원을 제공한 혐의를 받는다.

2022년 4월 7일 경기도 가평군에서 김 여사 측근인 건진법사 전성배씨를 통해 802만원 상당 샤넬 가방과 천수삼 농축차 1개를 김 여사에게 건넨 혐의도 있다.

윤씨는 같은 해 7월 5일 송파구에서 전씨를 통해 1천271만원 상당의 또 다른 샤넬 가방과 천수삼 농축차 1개를, 그달 29일에는 서울 광진구에서 6천220만원 상당 그라프 목걸이를 각각 김 여사에게 제공한 것으로 조사됐다.

전씨는 해당 물품을 잃어버려 김 여사에게 전달하지 못했다고 입장이지만 특검팀은 각종 증거와 다른 관계자 진술 등을 토대로 김 여사가 실제 선물을 받은 것으로 판단했다.

특검팀은 윤씨의 이러한 금품 제공이 한 총재 및 통일교 재정관리팀 국장을 지낸 배우자와 공모해 벌인 일로 보고 공소장에 이를 적시했다.

특검팀은 윤씨가 일련의 과정에서 김 여사에게 줄 선물을 구매한 뒤 선교활동지원비 등의 명목으로 해당 구매대금을 교단에서 보전받은 사실도 확인하고 한 총재, 배우자와 함께 약 8천300만원 상당의 횡령 혐의도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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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대통령(왼쪽)과 김건희 여사[연합뉴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