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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관세' 적법성 심리 나선 대법원

(연합뉴스 제공)

미국 연방 대법원이 5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등 세계 각국에 부과한 광범위한 관세의 적법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심리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외교 정책의 핵심 수단인 관세 부과가 대통령의 권한 내에 있는지 법적 판단을 받게 된 것으로, 대법원 결정은 국내외에 중대한 파장을 가져올 전망이다.

연방 대법원은 이날 워싱턴DC의 대법원 청사에서 이번 관세 소송과 관련한 구두 변론을 3시간가량 진행했다.

정부 측 대리인과 소송을 제기한 중소기업 및 민주당 성향 12개 주(州)를 대리하는 변호사들이 차례로 나와 법정 공방을 펼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애초 직접 구두변론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대법원 심리를 사흘 앞두고 "이 결정의 중대성을 흐리고 싶지 않다"며 불참 의사를 밝혔다.

대신 사안의 중대성을 보여주듯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 관세 및 무역 정책과 관련 대외협상의 '키'를 쥔 주요 정부 인사들이 방청석 앞쪽에 앉아 변론을 지켜봤다.

쟁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관세 부과의 법적 근거로 삼은 것이 정당한지였다.

1977년 제정된 IEEPA는 '국가 비상사태'에 대응할 여러 권한을 대통령에 부여하는 데 그중 하나는 수입을 '규제'할 권한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2일 미국의 대규모 무역적자가 국가 안보와 경제에 큰 위협이라고 주장하며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IEEPA에 근거해 100개 이상 나라에 국가별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한국에는 25%의 관세를 적용했지만, 이후 한국은 3천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등을 조건으로 이 관세를 15%로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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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

(연합뉴스 제공)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D. 존 사우어 법무차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비상 권한을 사용한 것은 미국의 무역적자가 미국을 경제·국가안보적 재앙 직전의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우어 차관은 관세 부과가 트럼프 대통령의 여러 무역 협상을 타결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주장하면서 그 무역 합의들을 되돌릴 경우 "미국은 훨씬 더 공격적인 국가들의 가차 없는 무역 보복에 노출되고, 경제·국가안보 측면에서 파괴적 결과를 맞으며 강한 나라에서 실패한 나라로 추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송을 제기한 중소기업들을 대리하는 닐 카티알 변호사는 이에 맞서 "관세는 곧 세금"이라며 "(헌법을 만든) 우리 건국자들은 과세 권한을 오로지 의회에만 부여했다"고 말했다.

카티알 변호사는 "의회가 IEEPA를 제정하면서 언제든, 어느 나라든, 어떤 제품이든 대통령이 마음대로 관세를 정하고 변경할 권한까지 넘겨줬다고 보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강조했다.

앞서 1심을 맡은 국제무역법원(USCIT)과 2심을 관장한 워싱턴 DC 연방순회항소법원 등 하급심 법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비상 권한을 활용해 전 세계에 관세를 부과한 조치가 불법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현재 보수 우위 구도(보수 6, 진보 3)로, 그간 주요 사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결정을 한 전례가 있어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이날 보수 성향 대법관을 포함해 상당수 대법관은 '비상사태'를 근거로 제한 없는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행정부 주장에 상당한 의구심을 표했다고 CNN과 뉴욕타임스 등은 보도했다.

보수 성향의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은 과세 권한에 대해 "그것은 언제나 의회의 핵심 권한이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도입한 관세가 "특정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서는 꽤 효과적이었다"는 점을 함께 짚었다.

트럼프 1기때 임명된 보수 성향의 닐 고서치,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도 대통령에게 관세를 부과할 권한이 있다고 주장하는 행정부 논리에 일부 의문을 제기했다.

배럿 대법관은 정부 측 대리인에게 "국방·산업 기반에 대한 위협 때문에 모든 나라에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 주장인가"라며 "일부 국가에는 그럴 수 있다고 보지만, 왜 그렇게 많은 나라가 상호관세 대상이 돼야 하는지 설명해보라"고 요구했다.

고서치 대법관은 "권력이 점진적이고 지속적으로 행정부에 축적되고 국민이 선출한 의회 권력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일방적 톱니'가 될 위험이 있다"며 행정부에 과도한 권한이 집중되는 데 따른 헌법상 삼권분립 훼손 우려를 제기했다.

반면 또 다른 보수 성향의 브렛 캐버노 대법관은 과거 하급심 법원이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유사한 법률에 따라 관세를 부과한 것을 허용한 선례가 있다면서 이는 의회가 대통령에게 "비상사태에 적절한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려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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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국가별 상호관세율 발표하는 트럼프 대통령

(연합뉴스 제공)

심리를 거쳐 나올 대법원 판결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대한 사법부의 최종 판단이라는 점에서 미국은 물론 관세 영향을 받는 전 세계 국가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대법원에서 관심도가 높은 사건들은 판결 확정까지 통상 6개월 이상 걸리는데 이번 관세 소송은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이르면 수주 내에도 판결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소송에서 패하더라도 무역확장법 232조, 무역법 301조 등 관세를 부과할 '플랜B', 즉 다른 법적 수단은 여전히 남아 있다.

다만 대법원이 제동을 건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언제든지 원하는 품목에 원하는 수준의 관세를 제한 없이 부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동시에 나온다.

아울러 패소시 환급해야 할 관세 규모가 최대 1조 달러(약 1천390조원)에 달할 것으로 트럼프 행정부는 추정하고 있다.

반대로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할 경우 전방위적 관세 정책은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IEEPA이 규정한 '국가 비상사태'를 명분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사실상 의회 견제 없이 관세 부과를 이어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