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10·15대책 이후 밀려드는 세금과 매도 상담으로 쉴 틈이 없다.
강남권은 이미 오래전부터 '3중 규제'로 묶여 있어 6·27 대출 규제 이후 거래 침체가 이어져 왔는데, 보유세 강화를 공론화한 것이 배경이다.
반포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현재 고가주택의 보유세가 낮다고 하는데 반포 일대는 집값이 올라 1주택자도 보유세가 이미 2천만∼3천만원에 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소득이 없는 은퇴자들이나 일반 직장인들은 세 부담이 큰 데 증세의 방향이 고가주택을 타깃으로 하고 있어 집주인들의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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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제공]
◇ "고가·다주택자 '문재인 정부 시즌2' 공포감까지 느껴"…양도·증여 저울질
정부가 10·15대책에서 부동산 세제개편을 예고한 가운데 고가주택과 다주택 보유자들이 술렁이고 있다.
그간 시장에서 떠돌던 세제 강화 방침이 공식화된 것으로 보고 최근 3년간 낮아졌던 보유세와 거래세가 다시 문재인 정부 수준으로 높아지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다.
지난 8월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을 시작으로 공식화된 '보유세 강화' 발언은 지난 19일에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으로 또다시 쐐기를 박는 모양새다.
구 부총리는 "부동산 보유세 강화는 납세자의 부담 능력에 맞게 공평 과세를 해야 하는 조세원칙인 '응능부담' 원칙에 해당한다"며 "다주택뿐만 아니라 고가의 1주택자도 봐야 한다, 집값이 50억원이면 1년에 5천만원씩 보유세를 내야 하는데 연봉의 절반이 세금으로 나간다면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다주택뿐만 아니라 고가주택 1주택자에 대해서도 세금을 대폭 강화하겠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강남구 대치동의 한 중개사무소 대표는 "이재명 대통령이 세금으로 집값 잡지 않겠다고 했지만, 결국은 다시 보유세 인상으로 귀결되고 있다"며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고가주택이나 다주택자들은 '문재인 정부 시즌2'가 시작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서초구 잠원동의 한 공인중개사 대표는 "1년에 수천만원의 보유세를 장기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은 자산가들이나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 주식·코인 투자로 떼돈을 번 사람들밖에 없을 것"이라며 "수십년간 아파트를 보유하다 재건축이 되고, 집값이 오른 평범한 조합원들은 앞으로 보유세 부담이 얼마나 커질 것인지에 대해 공포심마저 든다고 토로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정부가 '똘똘한 한 채'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내면서 강남권뿐만 아니라 한강벨트 일대 고가주택 보유자들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라는 게 중개업계의 설명이다.
성동구 성수동1가의 한 중개사무소 대표는 "이 지역은 아파트도 비싸지만 이미 재개발 사업지도 향후 한강변 프리미엄에 대한 기대감으로 지분 가격이 3.3㎡당 2억원을 넘는 상황"이라며 "전반적으로 세 부담이 커질까 봐 집주인들의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10·15대책 이후 세무·중개업계에는 고가주택과 다주택 보유자를 중심으로 매도와 증여를 놓고 저울질하려는 상담과 문의가 크게 늘었다.
앞으로 집값 상승 여부와 증여취득세·양도소득세 등 처분에 드는 비용을 고려했을 때 어떤 것이 유리한지 득실을 따져 대응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 당국자들이 잇달아 보유세 인상의 필요성을 언급한 지난 8월 이후 부동산 증여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대법원 등기정보광장 통계에 따르면 지난 9월 서울의 집합건물 증여 건수는 전월(645건)보다 36.5% 증가한 881건으로 연중 최고를 기록했다. 부자들의 '재산 리모델링'이 본격화된 것이다.
김종필 세무사는 "앞으로 보유세 부담이 크게 늘어날 것을 우려한 다주택자들이 내년 5월 양도세 중과 유예가 끝나기 전에 집을 팔거나 자녀 등에 증여해야 하나 고민이 깊다"며 "규제지역 확대로 조합원 지위 양도 금지, 정비사업 5년 재당첨 제한에 걸릴 가능성이 큰 사람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라 매도, 증여를 놓고 상담이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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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제공]
◇ 양도세 중과 부활하면 3주택자 세 부담 2배 넘어…매물 나올까
시장에서는 이에 따라 고가·다주택 보유자들이 앞으로 점차 절세를 위해 매물을 내놓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서울을 비롯한 규제지역은 당장 세제개편안이 나오지 않더라도 올해 집값 상승으로 내년도 공시가격 인상에 따른 보유세 인상이 불가피한 데다 공시가격 현실화율 제고나 보유세 공정시장가액비율 상향까지 겹치면 보유세 부담이 세부담 상한까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10·15대책 이후 서울 아파트 시장은 매물 수가 감소했다.
부동산빅테크업체 아실에 따르면 19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 물건수는 10·15대책 발표일에 매물이 7만4천44건에 달했으나 19일 기준 7만1천656건으로 3.3% 줄었다.
이는 토지거래허가구역과 규제지역 지정으로 매도가 어렵게 된 매물이 일단 회수된 영향으로 보인다.
그러나 앞으로 보유세 부담이 클 것으로 우려되는 다주택자 등은 내년 5월9일 양도세 중과 유예가 끝나기 전에 점차 매물을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
2주택 이상 다주택자들은 양도세 중과가 부활할 경우, 규제지역내 집을 팔 때 세부담이 급증하기 때문이다.
연합뉴스가 우병탁 신한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에게 의뢰해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6년 전 15억원에 매입한 조정대상지역의 주택을 25억원에 매도(양도차익 10억원)한다고 가정할 경우, 1주택자는 기본세율과 6년 장기보유특별공제를 적용해 3억3천300여만원의 양도세가 부과된다.
그러나 조정대상지역의 2주택자라면 장특공제 혜택 없이 기본세율에서 20%포인트가 중과되면서 양도세가 5억7천400만원으로 1주택자보다 2억4천100만원(72.4%)이 늘어난다.
만약 3주택자라면 양도 세율이 30%포인트 중과돼 세부담이 1주택자의 2배가 넘는(106%) 6억8천700만원으로 커진다.
양도세 중과 부활과 관련해 아직 정부의 방침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보유세 부담 때문에 집을 팔아야 할 사람들은 중과 유예 기간에 매도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병탁 전문위원은 "이번 10·15대책에서 보유세 증세를 공식화하면서 결과적으로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 전에 집을 팔라는 시그널을 준 격이 됐다"며 "올해 연말을 전후해 매물이 증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세제 개편 방향의 큰 틀이 '보유세 강화, 거래세 인하'로 알려졌지만, 똘똘한 한 채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해 고가주택 1주택자의 장특공제를 축소할 것이라는 관측도 시장에 영향을 줄 변수다.
고가주택 보유자는 보유세와 양도세 부담이 모두 커질 경우 시행 전까지는 매물이 나올 수 있지만, 제도 시행 후에는 오히려 양도세 부담 때문에 매물 잠김 현상을 가져올 수 있다.
시장에서는 정부와 여당이 지방선거를 의식해 공식적인 입장을 자제하고 있지만, 일단 다음달 발표되는 내년도 공시가격 현실화율과 공시가격 개편의 방향성과 12월 공개될 내년도 정부 업무계획의 내용이 1차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본다.
정부 방침에 따라 올해 말과 내년 초를 기점으로 매물이 늘거나 증여로 돌리는 수요가 늘어날 전망이다.
김종필 세무사는 "고가주택 보유자는 보유세, 양도세 부담이 모두 커질 수 있는 시계제로의 혼란한 상황"이라며 "증여취득세 부담에도 불구하고 블루칩 아파트는 양도 대신 증여를 선택하는 경우도 많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