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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곡성군의 신입 공무원이 성폭행 피해를 봤으나, 지자체가 이를 은폐하고 피해자 보호조치를 하지 않아 피해자가 또 다른 성폭행 피해를 본 사실이 감사 결과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19일 감사원이 공개한 '곡성군 정기감사' 결과에 따르면, 감사원은 군수 재직 시절 성폭행 사건을 은폐하고 가해자를 징계하지 않은 의혹으로 유근기 전 곡성군수를 수사 의뢰하기로 했다.
피해자인 A씨는 2021년 공무원 시보로 임용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공무직 B씨에게 강간미수 성폭행 피해를 봤다.
가해자 B씨는 업무를 잘하기 위해 연습을 거듭하던 A씨를 "스파게티 먹으러 오라"며 집으로 불러 성범죄를 저질렀다.
업무 반장 역할을 하는 B씨에게 "나쁘게 보여 좋을 일 없다"는 생각에 억지로 만났다가 성폭행 피해를 본 A씨는 피해 사실을 곧바로 곡성군에 신고했다.
그러나 이 내용을 보고받은 유 전 군수는 가해자를 고발하거나 피해자를 보호 조치하지 않고, 가해자의 사직서를 받고 소문나지 않게 조용히 처리하도록 지시했다.
관련 부서는 이 같은 군수의 지시가 "군수와 곡성군의 명예와 이미지가 실추될 우려가 있고 친구가 처벌받을 수 있어 군수가 소문나지 않게 사직서만 받고 조용히 처리하도록 지시하였다"고 생각하고, 가해자 B씨를 징계 없이 사직 처리만 하고 피해자 보호조치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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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의 소환조사를 받은 유 전 군수는 "가해자 B씨와는 친한 친구가 아니라 과거 교회에 같이 다닌 사이"라며 "처음 겪어본 일이라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다. 전부 저의 책임"이라고 잘못을 인정했다고 감사원은 적시했다.
유 전 군수는 "A씨가 B씨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보고받아 사직서를 수리한 것"이라고 변명하기도 했으나, 감사원은 "A씨가 마음을 바꿔 처벌을 원한다는 보고를 받았음에도 유 전 군수는 아무런 지시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A씨의 경찰 신고로 B씨는 징역 2년의 형사처벌을 받게 됐고, A씨는 이 사건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치료비 100여만 원을 지출했다.
그러나 징계받지 않아 퇴직금 1천800여만 원을 고스란히 수령하고 퇴사한 B씨는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했음에도 재산이 없어 손해를 한 푼도 배상하지 않았다.
A씨의 피해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곡성군은 피해자 보호조치를 소홀히 해 A씨를 다시 원래 업무부서로 복귀시켰다.
이에 따라 A씨는 B씨의 동료인 또 다른 공무직 C씨에게 "술 마셨으니 집에 데려다 달라", "보고 싶다, 일주일에 3번 전화해라" 등 폭언·갑질·성희롱 등 2차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
직장으로 찾아온 B씨의 부모로부터 합의를 종용받으며 압박성 발언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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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조치 소홀은 결국 또 다른 성폭행 피해를 양산했다고 감사원은 봤다.
A씨는 2024년에는 보건의료원 지소에서 또 다른 공무직 직원으로부터 강간미수 성폭행 피해를 당해, 가해자가 재판받는 중이다.
감사원은 앞선 사건에서 분리·전보, 재발방지대책 마련 등 곡성군이 피해자 보호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2024년 성폭행 사건에서도 곡성군 상급 공무원은 "진료실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 소리를 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냐?", "왜 남자를 보건지소에 들여, 네가 조심했어야지"라고 말하는 등 오히려 A씨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이 밖에도 A씨는 휴일에 출근하지 않고 수당을 받는 환경미화원들의 부패행위를 신고하기도 했으나, 돌아온 것은 신고 취소 강요와 신고자 신원 노출이었다.
A씨는 관행처럼 휴일에 근무하지도 않고 허위로 근무이력을 올려 수당을 받아내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했으나, 관련 부서는 조사를 방해하며 허위 서류를 내라고 지시했고 직원들은 A씨를 '왕따'시켰다.
감사원은 성폭행 사건 은폐, 부패행위 지시 등에 연루된 공무원들에 대해 해고 1명, 강등 2명, 정직 1명, 경징계 4명 등 징계 처분을 요구하고 곡성군과 의회에는 통보나 주의 조치를 내렸다.
한편 곡성군은 이번 감사에서 ▲ 근무성적평정·승진 심사 부당(승진자 내정) 처리 ▲ 병가 중 국외여행 ▲ 산지전용·복구비 관리 소홀 ▲ 농지 관리 부실 등도 적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