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조용필, 이 순간을 영원히' 공연 사진 [KBS 제공]
"제가 이 나이에도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그거 아세요? 노래하면 건강해지고, 건강하면 오래 삽니다."
'가왕'(歌王) 조용필(76)은 지난 9일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체조경기장)을 가득 채운 1만여 관객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띤 채 이렇게 말했다.
평소 공연에서 코멘트를 절제하고 노래에 집중하기로 유명한 그지만, 이날은 유독 객석에 일일이 말을 걸며 살갑게 팬들과 소통했다.
조용필은 "공연할 때마다 이렇게 많은 분이 오신다. 여러분이 있기에 제가 노래할 수 있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원조 오빠부대'를 자랑하는 가왕답게, 그는 공연장 1층, 2층 혹은 좌우를 가리키며 팬들의 함성 크기를 체크했고, 객석 여기저기서 "오빠!", "형님!"이라는 우렁찬 외침이 들려왔다.
조용필은 지난해부터 광주, 대구, 부산 등지에서 전국투어를 열었고 서울 KSPO돔은 그 종착지였다.
서울 공연 첫날인 이날은 조용필이 60년 넘게 각별한 인연을 이어온 중학교 동창 고(故) 안성기가 세상과 작별한 날이었다.
그는 지난 5일 죽마고우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한달음에 빈소를 찾았지만, 공연에선 이와 관련해 별다른 언급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여 모습은 어딜 갔나 그리운 친구여'(친구여), '서로 사랑한 친구가 있었네 내가 사랑한 님도 있었네 이제는 모두 떠나버리고 홀로 남아'(고독한 러너), '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 될 또 다른 사람들'(바람의 노래) 등의 노랫말이 퍼질 땐 가슴뭉클한 공기가 공연장을 감쌌다.
X
조용필 콘서트가 열린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체조경기장) [연랍뉴스 제공]
조용필은 자신의 밴드 위대한탄생과 함께 커다란 일(一)자형 무대에 올라 웅장한 사운드가 돋보이는 '태양의 눈'을 오프닝부터 꺼내 들었다. 고음 구간에서는 고개를 뒤로 젖히거나 두 어깨를 '으쓱' 들어 올리는 특유의 자세로 흐트러짐 없는 라이브를 선보였다. 오랜 기간 함께해온 위대한탄생은 척척 호흡을 맞춰가며 수려한 연주를 뽐냈다. 가왕이 고음과 함께 두 팔을 앞으로 쭉 뻗자 그가 발산한 에너지에 호응하듯 객석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는 이 곡을 시작으로 '물망초', '자존심', '킬리만자로의 표범', '그 겨울의 찻집', '돌아와요 부산항에' 등 시대를 아우른 다양한 장르의 히트곡을 2시간 넘게 쏟아냈다.
1968년 데뷔 이후 58년간 팝 록, 오페라 록, 발라드, 전통가요, 판소리까지 다양한 장르를 섭렵한 가왕답게 공연에서는 친숙한 히트곡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공연을 위해 새롭게 편곡된 노래들을 원곡과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었다.
조용필은 '그대여'를 부를 때는 빨간 기타를 직접 메고 록스타처럼 베이스·기타 연주자와 합주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그가 '나는 그대를 사랑해!'라고 노래하자 '조용필!'이라고 뒤따르는 객석의 추임새는 호흡이 척척 맞았다.
'추억 속의 재회', '비련', '단발머리', '허공' 등 감성적인 히트곡이 이어지면서 공연장 분위기는 더욱 무르익었다. '비련'의 유명한 첫 소절 '기도하는∼'이 흘러나오자 1만여 관객은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꺄∼!' 하고 입 모아 함성을 질렀다.
조용필이 '단발머리' 노래 도중 "자 여러분 같이 불러볼까요"라고 제안하자, 관객들은 '그 언젠가 나를 위해 꽃다발을 전해주던 그 소녀∼'라고 떼창으로 화답했다. 가왕은 두 팔로 박자를 맞춰가며 이 장면을 음미하다 "좋아요!"라고 외쳤다.
그는 또한 어쿠스틱 기타 연주가 쓸쓸함을 더한 '그 겨울의 찻집'을 부르고서는 "여러분 즐겁습니까. 전 행복합니다"라고 만족스러워했다.
'고독한 러너', '판도라의 상자' 등 오랜만에 들려주는 반가운 곡들도 있었다. 조용필은 '고독한 러너'에 대해 "늘 이 곡이 신청곡으로 들어오지만, 다른 곡에 밀리고 밀렸는데, 오늘은 안 밀렸다"고 말했다.
공연 후반부 '미지의 세계', '여행을 떠나요', '바운스'(Bounce), '모나리자' 등 국민적인 애창곡이 이어지면서 관객들은 모두 일어나 입 모아 노래하며 춤도 췄다.
X
노래와 연주는 물론 볼거리까지 심혈을 기울이기로 유명한 조용필답게, 이날 공연에서는 무대 뒤 설치된 초대형 LED 영상과 레이저 조명이 빚어내는 시각적 효과가 관객을 압도했다.
LED에는 한국 전통 자개 문양(자존심), 쏟아지는 폭포수(추억 속의 재회), 강렬하게 타오르는 불꽃(아시아의 불꽃) 등 노래에 어울리는 형형색색의 영상이 마치 EDM 축제처럼 쉴 새 없이 펼쳐져 객석을 몰입시켰다.
관객들은 '남편보다 조용필', '형님!', 'K팝의 뿌리 세기를 넘어선 단 하나의 목소리'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환호를 보냈다.
2시간 넘도록 음, 박자, 연주 무엇하나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은 가왕의 무대에서는 음악을 향한 깊은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그는 실제로 공연에서 "하루 종일 노래만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의 명성답게 KSPO돔 인근에는 기온이 뚝 떨어진 날씨에도 오랜 팬들이 각지에서 몰려들었다. 특히 지난해 추석 방송돼 큰 화제를 모은 KBS '조용필, 이 순간을 영원히' 이후 젊은 관객과 남성 관객이 부쩍 늘어난 듯했다.
X
조용필 콘서트가 열린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연랍뉴스 제공]
경기도 수원에서 아내와 함께 온 박향목(66)씨는 "아내보다 내가 조용필을 더 좋아한다. 중학생 때부터 팬이었고, 특히 '고추잠자리'를 가장 좋아한다"며 즉석에서 들뜬 표정으로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 봐 그런가 봐 엄마야∼ 나는 왜'라고 한 소절을 불렀다.
박 씨는 "조용필은 유행을 타지 않고 시원시원하게 오래도록 활동하는 가수"라며 "노랫말의 내용도 마음에 참 와닿는다"고 말했다.
조용필은 10∼11일 같은 장소에서 두 차례 더 공연을 연다.